나는 치타다. 아프리카 초원을 시속 120km로 달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포유류이다.
나는 오늘도 달리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사방이 아파트 단지로 꽉막힌 한 초등학교의 운동장을 달리고 있다.
내가 왜 이곳에 와있는지는 알길이 없다. 그래도 그냥 달리기로 했다. 나는 가장 빠른 육상 동물이니까.
하지만 운동장은 비좁다. 나는 달리고 싶어도 더 빨리 달릴 수가없다. 조금 달릴만하면 이미 운동장은 회색 담벼락으로 그 끝을 알리고 있다. 그렇게 수십 번을 좁은 운동장 사이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음을 확실히 깨닫았다.
결국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머리를 땅바닥에 대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콧바람에 모래알갱이가 먼지를 일으키며 피어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어디선가 볼품없어 보이는 얼룩무늬 고양이 한마리가 내게 다가왔다.
'넌 이동네에서는 못보던 고양이구나. 어디서 왔니?'
맙소사. 고양이라니! 난 저 무지하기 이를 데 없는 고양이의 오류를 바로잡아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난 고양이가 아니라 치타라고. 봐. 너랑 생긴것 부터가 다르잖아?
'치타? 내가 보기엔 넌 고양이야. 생긴것도 나랑 크게 다를게 없는걸?'
나는 앞발을 일으켜 날렵하게 잘 빠진 내 몸매를 보여주었다.
'잘 봐, 이래도 모르겠어?'
'네가 몇끼를 굶었건 내가 알바는 아니야.'
'...그게 아니라, 이 맵시있고 날렵한 몸을 보라고. 내가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이유중에 하나지.'
'조금 빨리 달릴 수 있다고 고양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 우리 고양이들은 다 빠르고 민첩해. 간혹 너무 살이 쪄서 굴러다니다시피 하는 녀석들도 있지만 그건 특별한 경우니까 빼고.'
'빠르다는것은 치타의 생명과도 같은거야. 단순히 그냥 빠른게 아니라고. 너는 상상도 못할만큼 빠르다고.'
'그럼 얼마나 빠른지 보여주겠어?'
나는 곤란해졌다. 좁디좁은 이곳에서는 내가 얼마나 빠른지 보여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너무 좁아서 곤란해. 달리려고 하기도 전에 길이 끝나버리거든. 여기가 아프리카 초원이었다면 난 눈깜짝할 사이에 네가 날 보지못할 만큼 먼곳에 가있을 수도 있어.'
'그럼 보여줄 수 없다는거잖아. 그러니까 결국 넌 고양이가 맞는거네?'
'..그게 아니라니까! 난 치타라고!!' 어째서 몰라주는거야?!'
'그야 네가 치타라고 증명할 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기때문이지. 네가 정말 치타라면 여기 있을이유도 없잖아?'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는건지 그건 나도 잘 몰라. 증명할 방법이 지금 당장 없다는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난 치타가 맞다니까!'
'넌 정말 억지가 심하구나.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으면서 믿어달라니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니?'
'..하..하지만..난..!!'
'됐어. 그만해. 더 이상 네 궤변을 듣고있을 이유가 없는것 같아. 잘 생각해봐. 넌 그냥 조금 덩치 큰 고양이일 뿐이야. 설령 네가 정말 치타라도, 아무리 빨리 달릴 수 있다고 해도 여기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나는 무엇인가를 더 말하려 했지만 고양이는 흥미를 잃었다는듯 크게 하품을 한 뒤 어디론가 가버렸다.
내가 고양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다시 좁은 운동장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벽이 가로 막혔다.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또 다시 벽에 가로막혔다.
그렇게 뛰다가 돌아서서 다시 뛰어가기를 한참을 반복했다.
이튿날, 고양이가 네게 다시 찾아와서 말했다.
'어때? 잘 생각해봤어? 아직도 네가 치타라고 생각하니?'
나는 함참을 생각하다 대답 대신 녀석의 못덜미를 힘껏 깨물었다.
고양이는 한참을 버둥거리다 이내 축늘어졌다.
초죽음이 된 고양이의 몽뚱이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말했다.
'이젠 알겠지? 내가 고양이가 아니라 치타라는것을.'
피투성이가 된 고양이는 가까스로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말했다.
'아...넌 치타가 되고 싶은 고양이였구나.'
결국, 내가 치타임을 증명할 고양이가 죽어버렸으므로 난 치타가 되고 싶은 고양이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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