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말한다.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어. 그 기억이 현실적으로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단지 연료일 뿐이야. 신문의 광고 전단지나, 철학책이나, 에로틱한 잡지 화보나,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나, 불에 태울 때면 모두 똑같은 종이 조각일 뿐이지. 불이 '오, 이건 칸트로군' 이라든가, 이건 요미우리신문의 석간이군' 이라든가, 또는 '야, 이 여자 젖통 하나 멋있네' 라든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타고 있는 건 아니잖아. 불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떤 것이든 모두 종잇조각에 불과해. 그것과 마찬가지야. 중요한 기억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기억도, 전혀 쓸모 없는 기억도, 구별할 수도 차별할 수도 없는 그저 연료일 뿐이지."
고오로기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만약 그런 연료가 내게 없었다면, 그래서 기억의 서랍 같은 것이 내 안에 없었다면,  나는 아마 아득한 옛날에 뚝 하고 두 동강이 나 버렸을 거야. 어딘가 낯선 곳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길바닥에 쓰러져 개죽음을 면치 못했겠지. 중요한 것이든 아무 쓸모 없는 것이든, 여러 가지 기억을 때에 따라, 꺼내 쓸 수 있으니까,이런 악몽 같은 생활을 계속하면서도, 나름대로 살아갈수 있는 거야. 더 이상은 안 돼, 더 이상은 못 해, 하고 생각하다가도, 어떻게든 그 난관을 넘어설 수 있는 거지."

'어둠의 저편' 中 --무라카미 하루키


::기억 그리고 F.

누구나 기억속에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흘러간 옛연인, 친구들 혹은 우연히 마주친 사람일지라도 말입니다. 아우라를 지닌 강한 이미지가 한번 뇌리속을 파고들면 좀 처럼 헤어나오기가 힘듭니다. 그것은 카메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니콘의 F 처럼 말입니다.

니콘의 F는 참 복잡한 뉘앙스를 가진 단어입니다. 사진가의 편의를 돕는 훌륭한 장비는 참으로 많습니다만 그중에서도 니콘의 F가 뿜어내는 특별한 아우라는 자부심,신뢰감,동경,지독하디 지독한 에고 따위의 단어가 뒤섞인 묘한 느낌입니다. 단순히 기계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것이죠. 디지털 장비가 대세가 되어버린 요즘에도 F의 수요는 꾸준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힘의 원천은 무엇있까요?
오늘은 그중 3번째 'F' F3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비약한 작문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해 이야기를 꺼내는것은 세월이 흘러 이야기의 끝단을 매듭지을 수 있게된 시점에서 일전의 이야기를 확실히 마무리 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도 있습니다
.
 

그녀.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저는 F3에게서 역대 F 가운데 가장 여성적인 느낌을 받곤합니다.
물론 동의하지 못하실분들이 절대다수일것으로 압니다. 펜타프리즘에 선명히 새겨진 묵직한 니콘로고를 보고있음에도 그가 아닌'그녀'에 가까운 느낌으로 F3을 대하게 되는것은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는 연인들의 어설픈 그것과도 비슷한 인연을 가지고 있기때문인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냘픈 허리를 감싸앉았을때와 비슷한 그립감도 한몫하는것 같군요 : )
사실 수동기에서 그립감을 논하는것은 좀 아니다 싶긴 합니다만.

사실 F3는 여성처럼 섬세하고 세심한 카메라입니다. 아시다시피 F3의 경우, 최초 필름을 로딩하면 셔터스피드가 1/80초로 고정되어 버립니다. 중요한컷을 행여나 이미노광된 필름에 담을라 지나치게 세심한 면이있다고나 할까요? 나이든 아들에게도 아직까지 염려하는 마음에서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어머니 같다는 느낌입니다 : )  하지만 꽁수로 한컷이라도 아껴보려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스트레스인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고정된 셔터스피드에 맞쳐서 조리개치를 결정하면 해결되는 문제이긴 합니다만 상당히 성가신것이 사실이지요. 저처럼 어지간한 촬영은 자동모드에 의존하는 사람은 더욱그렇습니다.
애정어린 잔소리라 할지라도 잔소리라는것이 항상 그런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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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 / TMX 2005년.  Copyrights ⓒ 2008 mindviewer.net. All Rights reserved

::도구로써의 카메라. 카메라라는 이름의 도구

카메라는 촬영을 하기위한 도구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소지한 도구는 촬영에 가장 효율적인 메커니즘을 가진 몇가지 종류의 카메라로 한정되여야 할터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개인 마다 카메라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는것을 보면 카메라는 단지 촬영만을 위한 도구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F3가 처음 세상의 빛을본지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때와는 비교하기 힘든만큼 변화했습니다. 물론 카메라의 기술적이 부분이나 그 제조사의 마인드 마져 변해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필름을 장전하고 호흡을 고르며 셔터를 릴리즈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빠르게 데이터가 저장되고 LCD를 통해 이미지를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이 왔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예전처럼 더 이상 일부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일례로 길거리를 걷는 동안에도 최신식 전자장비로 무장한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을 무척이나 쉽게 마주칠수 있습니다. 카메라가 넘쳐난다는 표현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F3의 위치는 과연 어떤것일까요?

현재 F3의 위치는 F3라는 이름을 가진 그것이 처음 세상에 선보였던 시기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압도적인 성능을 가진 니콘의 3번째 플래그 쉽. 최고급 프로페셔널 장비. 활동적인 사진가를 위한 신뢰감넘치는 프레스용 장비. 가난한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겐 꿈의 바디.
그때와 달리 지금의 F3에게 이에 해당되는 문장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냉정히 말하자면_ 많이 팔린만큼 구하기도 쉬워 '레어' 아이템도아닌데다가  아니고 누구나 큰 부담없이 싼맛에 사용해볼 수 있는 흔한 바디, 최근의 카메라들에 비하면 너무나 불편하고 효울적이지 못한 한물간 장비.  라는게 적절한 표현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F3의 파인더를 바라보며 세상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 존재 자체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흘러간 옛 연인을 그리워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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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 / TX   2004년. Copyrights ⓒ 2008 mindviewer.net. All Rights reserved
::그리워 하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자 연예인들이 정말 '쏟아져' 나온다고 말해도 좋을만큼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텔레비젼의 화면으로 보여주는 몸짓이나 목소리 말투에서 정말로 호감이가고 매력이 느껴지는 연예인을 찾기는 쉽지않습니다.
카메라또한 그러합니다. 최신의 기술이 총망라된 카메라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기계적인 성능을 물론이고 디지털화된 세상을 헤쳐나가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파인더를 바라보며 셔터를 누르면 예전에 느꼇던 그 무엇을 맛볼수 있을지는 쉽게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장비라면 사진가의 촬영욕구를 극대화할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소유한 도구와 코드가 맞지않아 촬영의욕이 저하 된다면 이미 도구로써의 가치를 상실한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보기때문입니다. 파인더를 바라보고 셔터를 릴리즈하는 순간 손끝에 와닿는 감촉, 그리고 미러가 올라갔다 내려가며 셔터막이 열리고 닫히는 일련의 과정에서 오는 작은 소음. 이 모든것이 사진가가 보고자 하는 그 무엇가 일치한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도구.

세월이 흘러 카메라는 기술적으로 진보하고 있지만 카메라가 아닌 무기질로 이루어진 비싼 기계 덩어리가 되어간다는 느낌입니다. 현장을 누비는 프레스나 전업 사진가가 아닌 대부분의 취미 사진가들은 이들이 가진 빠른 AF라던가 무식할 정도의 연사속도. 지나칠 정도의 내구성. 중형포멧 필름 카메라에 육박하는 해상도-따위가 필요가 없는게 사실입니다.
전업사진가들에게는 결과물이 그들의 능력을 입증합니다. 그들에게는 실패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대다수 생활 사진가에게는 결과물만이 미덕이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오늘도 흘러간 옛 연인을 그리워 하는 많은 이들이 F3를 곁에두고 있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녀는 고지식하지만, 타협하지않는 고고함과 수수한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때론 현명합니다.
그런 그녀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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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TX    2004년. Copyrights ⓒ 2008 mindviewer.net. All Rights reserved

:: 그녀의 매력

그녀에 대한 애찬을 늘어놓고 매력이 무어냐 물었을때,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굉장히 쑥스러운 일이될 것입니다 : )

본질적인것은 아니지만, 현재에 이르러 기계식 카메라의 매력은 '손맛' 이라고 표현되는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그중 한 축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그리고 F3은 그것을 느끼기에 매우 적합한 카메라 중 하나입니다.부드럽게 반응하며, 몸속의 부속들이 정교하게 맞물리면서 움직이는 리와인딩 레버가 그러하며 가볍게 '딸칵' 소리를 내며 머리를 열어보이는 교환식 파인더 또한 그러합니다. 사실. 조금 팔불출 같은 소리를 하자면 바라만보아도 배가 부르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뷰파인더의 완성도는 현재의 어느 카메라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은 오히려 압도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제가 많은 기기를 다루어 보지는 못했지만 135포맷에서 F3의 클리어하고 시원한 뷰파인더와 비교할만한 카메라는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 입니다. 지금도 무척이나 좁고 답답하기 짝이없는 대다수의 디지털기기의 파인더를 보고 있자면 그녀가 그리워지는것은 어쩔수 없는 일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F3를 논할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전용 모터드라이브인 MD-4를 장착했을때 들려주는 아름다운 셔터음입니다. 다른 부분은 개개인마다 이견이 있겠지만 셔터음만은 F3를 따라올 기기가 없다고 입을모아 이야기 하게되는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그녀의 음색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후, 파일을 구한다면 그 호쾌하고 아름다운 셔터음을 꼭 들려드리고 싶군요.

잔 고장 제1순위인데다가 제 기능을 못하는 묻지마 수준의 일루미네이터 라던가. 무게중심은 전혀 고려하지않은 몰상식한 모터드라이브의 디자인같은 소소한(?) 단점은 그냥 그녀의 귀여운 애교로 넘어가려한다면 지나친 편애일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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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 / TMX   2004년. Copyrights ⓒ 2008 mindviewer.net. All Rights reserved

::다시 돌아올수 없는 연인처럼.

얼마전, 현실속의 옛연인을 몇 해만에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녀를 대하면 무척이나 할말이 많을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더군요.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시절의 저와 지금의 그녀는 다른 사람이란것을 실감했습니다. 시간은 많은것을 매섭게 바꾸어 버립니다. 지금의 저와 그녀가 바라보는 그 무엇은 이미 하늘과 땅만큼이나 아득히 다른곳에 속하고 있는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인정해야만 되는 당연한 현실인 동시에 씁쓸한 그 무엇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것과 같이, F3는 매우 사랑스러운 카메라입니다.
어느 누가 저에게 물어도 '무척 좋은 카메라이다' 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떠나보낸 F3를 다시 내품으로 데려올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마 앞으로도 그럴일은 없을것 같습니다. 전 이미 지금 상황에서 제가 필요한 용도를 지닌 프레스용 디지털 바디를 마음에 두고 있고 곧 구입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필요한것은 F3가 아니니까요.

지금 이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때론 그것이 못마당하고 야속하지만 저 또한 그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맡기고 유영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현실속의 그녀가 그러하였듯 그녀라 지칭한 F3역시 저의 기억의 한자리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다시 돌아올수 는 없는 연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슬퍼할 일은 아닙니다. 그녀와의 동거가 무척이나 행복했고 그녀의 투명한 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동안 참으로 황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련하지만 좋은 기억이고, 감사하고 행복한 기억입니다.
이제와 이렇듯 '참 좋은 만남이었어' 라고 회상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현실속 그녀와의 인연 역시 그러하였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을 맺을 수 있게 만들어준 시간에 새삼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런이유로 또 한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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