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처음 A에게 호감을 느낀것은, A가 묶어 올린 뒷머리 아래로 흐르는 목선에 매료 되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지극히 수컷적인 본능이 작용한것이라 고백한다.
A는 주변과의 관계를 맺는데 무척이나 서툰 사람이었다. 나 또한 스스로도 그런한 부류에 속한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내가 그리 느낄 정도면 A의 경우는 레벨이 다르다고나 할까. A를 나의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시켰을때 A는 거의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자리에는 나가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물론 A는 그의 친구들을 나에게 소개시켜준적도 없다. 믿지않을지도 모르지만, 난 A의 집이 어느곳에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A를 집까지 배웅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A의 집위치를 집요하게 물었음에도 A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나에게있어 A는 지금도 참 미스테리한 존재다.
A는 공부를 무척이나 열심히 했다. 생활의 대부분을 학교와 도서관에서 보냈다. 한번은 억지로 낀 술자리에서 과제노트를 꺼내 공부를 한것을 목격한 일도 있다. 나는 A에게 그토록 '무식하게' 공부를 하는 목적이 뭐나고 물었을때 A는 그것이 아니면 달리 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 대답했다. 사실 A는 뚜렷이 뭔가 이루고 싶은것은 없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훌륭해지고는 싶다고 했다. 그런 A에게 시험은 무척이나 커다란 의식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성스럽기까지 한.
그리고, 시험일 한 달 전부터 난 A를 만날 수 없었다.
A는 시간 약속을 참 잘 지키는 편이었다. 언제나 약속시간 안에 약속 장소에 나와있었고 행여나 늦더라도 10분을 넘기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A와 약속을 한다는 자체가 무척 어려운 과제였다. 왜냐면 A는 약속 자체를 꺼려했으니까. 사실 당일 시간 약속을 늦은 법이 없었으나. 일주일 혹은 몇일전의 약속은 일방적인 통보로 무산되기가 다반사였다. 문제는 그놈의 공부. 공부였다. 그리고 그 것에 대한 중압감. 실제 스케쥴에는 여유가 있었음에도 그 중압감 때문에 약속에는 응할 수 없다는 것이 A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해해달라' 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런 이유로 난 끄덕끄덕 할 수 밖에는 없었다.
이해심도 없는 사람이라는 딱지는 달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남자는 군대를 다녀오면 다 어른이 되는 줄만 알았다. A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가르쳐 주었다.
A는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곤란한 상황이 되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전화를 받지않았다.가끔씩은 길게는 일주일이나 보름이상 소위 말하는 '잠수'를 타곤 했다. 일이 터지면 전화기를 꺼두는 타입이 있지 않은가. A가 그랬다. 시간이 흐르고 사건이 종료된 시점에서 A에게 '그때 왜 그랬느냐'를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이러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이해해줘.'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는 도서관에 있었다.
당시에는 정말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원래 담배를 피지 않던 A가 담배를 피는 모습을 딱 한 번 마주한 적이 있다.
술잔을 연신 들이키며 진지한 눈빛으로 A는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졸업을 하면 꼭 파리에 가고 싶어."
"가서 뭐 할려고?"
A는 담배연기를 조용히 내뿜으며 다시 한번 또박또박 힘주어 말햇다.
"그냥.. 파리에 가고 싶어."
그리고 얼마후 그렇게도 열심히 하던 전공과 무관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A를 보았다.
사실 A의 전공은 불어였다.
A를 알던 반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A와 서른 번 아니, 마흔 번도 더 섹스를 한 것 같다. 나는 A가 한 번도 나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A는 항상 무언가 조급했고. 나와 시간을 보내면서도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면에 둔감한 편인 내가 그 사실을 너무나 극명히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A와의 섹스에 집착했다. A가 내 목을 감고, 키스를 나누는 그 시간 동안만은 A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과 유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착각일 수도 있겠다.
가끔 A가 나를 안아줄 때가 있었는데, 그러할 때는 칠칠 맞게 눈물이 핑 돌기 까지 했음을 고백한다. 나 정말 사랑 받고 싶었었나보다. 그리하여, 지금도 나에게 있어 섹스란 왠지 비장하기까지 한 느낌으로 남아있고, 어느 누군가가 내게 안기는 것보다 내가 그에게 안기는 것을 좋아하게 되어버리기에 이르렀다.
내가 목마른 애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 할 때도 A는 '이해해달라'는 코멘트를 잊지 않았다.
A는 (자기 기준에서는) 충실하지 못한 하루의 삶을 장래에 대한 커다란 불안과 연결짓고는 거기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더욱 더 자신을 짜여진 일정에 끼워 맞추는 그런 사람이었다.
몇 해가 지난 어느 겨울날, 나는 A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마주보고 식사를하고, 영화를보고, 역앞 광장에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A는 사무직 공무원이 되어있었다.
그 증거로 허리까지 내려오던 머리칼이 지나치게 단정하다 싶을 정도로 짧아져 있었다.
무슨일을 어떻게 하는지 자세하게 묻진않았다. 나도 알고싶지않고, A역시 자세히 말하고 싶진 않을테니까.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것은 분명 A가 되고싶었던 빠리지엔느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겨울이라 해가 짧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헤어질시간이 되자, 무엇인가 무척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다시는 서로 볼일이 없을거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나에게는 더 이상 A의 시간을 붙잡아둘 수 있는 명분이 없는것을.
A는 긴 코트 자락을 파락거리며 종종 걸음으로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A가 사라지기전에 무척이나 묻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A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무엇이 아쉬웠는지 한참을 역 앞 광장근처를 어슬렁 거리며 배회했다.
그리고 평소에는 듣지도 않는 음악CD 한 장을 구입하고서야 전철에 몸을 맡겼다.
차안의 온기로 차가워진 몸이 녹을때 즈음이 되어서야 A에게 질문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A는 지금도 파리에 가고 싶어할까.'
내가 A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그때의 마음과 A가 빠리지엔느가 되고자 했던
그 마음은 사실 크게 다른 것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A는 어느 정도 이해받는 것에는 성공한 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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